F.A.

3 Dots

▪ 도시 재개발로 공간뿐 아니라 기억과 공동체가 사라지는 지역 소멸이 진행되고 있다.
▪ 부산의 『다시, 부산』,  인천의 『스펙타클』, 옥천의 『월간 옥이네』 등 로컬 매거진은 사라지는 지역성과 일상을 기록하며 도시 곳곳에 새겨진 감정과 기억을 붙잡는다.
▪ 로컬 매거진은 독립서점 등 지역 공간과 공동체의 참여를 통해 지역과 지역민을 잇는 소중한 매개체가 된다.

 


 

도시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낯선 고층 빌딩 아래 누군가의 유년이 깃든 골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오랫동안 문을 열었던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철거된 재개발 구역의 담벼락에 붙은 이사 안내문만이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그렇게 동네는 사라진다.

 

단지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로만 이런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진짜 문제는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까지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 지나던 골목, 이름은 몰라도 인사를 주고받던 얼굴, 오후 햇살이 머무르던 창가 같은 일상적인 풍경들. 그런 사소한 장면들이 쌓여 한 동네의 분위기와 온도를 만들어 왔는데 이제는 그 모두가 흔적 없이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도시 재개발이나 변화를 넘어 *지역 소멸이라는 보다 더 근본적이고 깊은 위기를 드러낸다. 지역 소멸이란 인구가 줄고 가게가 없어지는 현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삶의 흔적이 지워지고 공동체가 해체되며 장소와 사람이 맺고 있던 관계가 끊어지는 일을 뜻한다.

*정부는 2023년 11월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하며 2000년대 이후 지역으로 대체되었던 지방이라는 용어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방이라는 명칭은 중앙과 지방 간의 위계를 전제로 한 표현으로, 수직적인 관계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본 글에서는 지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지역 소멸은 소도시나 구도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대도시 안에서도 우리는 익숙했던 장소들이 낯설게 변해가는 모습을 본다. 동네 이름은 그대로지만 그곳에 깃들어 있던 시간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소멸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기억을 붙잡으려는 움직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것은 거창한 복원 사업도, 대규모 도시 프로젝트도 아니다. 오히려 작고 조용하고 어쩌면 느린 방식의 로컬 매거진이다.

 

로컬 매거진은 단순히 지역을 소개하는 잡지가 아니라 한 동네의 숨결을 기록으로 붙잡아두려는 시도와 같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각으로 써 내려감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잊혀질 것을 기억하며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가 종이에 새겨졌을 때, 장소의 온도는 비로소 기억으로 남는다.

옥천의 로컬 매거진 『월간 옥이네』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
로컬 매거진 『다시, 부산』이 발행한 『맛있는 부산』 Ⓒ텀블벅

지역을 기록하는 한 장의 페이지

로컬 매거진은 지역이라는 장소가 가진 감정의 층위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단순히 동네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기억을 세심하게 수집하고, 소멸하는 지역성을 고요하게 증언하는 일이다. 그 행위는 지금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작고 진지한 선언이기도 하다. 빠르게 변화하고 쉽게 망각하는 이 도시에서, 로컬 매거진은 “기억하겠다”는 감정의 기록물로 존재한다.

 

로컬 매거진은 하나의 장소를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는 장소를 바라보는 태도, 삶을 해석하는 방식, 기록에 대한 소명이 함께 담긴다. 그렇기에 로컬 매거진은 언제나 작은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아주 오래된 시장에 대한 이야기, 특정 가게에서 오랜 시간 일해 온 사람의 일상, 사라진 학교와 남겨진 교실의 기억 같은 것들. 거대 담론이 미처 조명하지 못한 지역의 “주관적 풍경”들이 이 매체의 중심에 있다. 그것들은 언뜻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사소함 속에서 어떤 진실이 드러난다. 로컬 매거진은 그런 점에서 지역의 감각을 “기록”하기보다 “채록(採錄)”하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곳에 있는 고유한 색채와 감정을 수집하는 일. 그렇게 잘 담아낸 매거진 한 권은 지역의 문맥을 읽는 감각적 도구가 된다.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매체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도시 속 정보는 넘치지만 감정의 기록은 부족하다. 데이터는 정교해졌지만 장소에 머문 시간과 기억은 점점 사라진다. 로컬 매거진은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의 흐름에 반해 종이라는 물성 안에 시간을 눌러 담는다. 서두르지 않고 미루지 않으며 오래 바라보고 쓰는 태도가 페이지마다 느껴진다. 그렇기에 로컬 매거진은 동네에 대한 자료집이 아니라 일종의 “기억의 방식”이 된다. 모두가 지나쳤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풍경들.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말, 손, 감정이 기록되는 과정은 단지 지역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감각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로컬 매거진은 질문한다.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조용히 답한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이 단순하고도 깊은 대답이 로컬 매거진을 통해 반복되고 있다.

북라운지에서 로컬 매거진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THE PR
지역 콘텐츠를 활용한 로컬 브랜드 전시 장면 ⒸTHE PR

로컬을 기록하는 서로 다른 시선들

로컬 매거진을 만드는 이들은 지역 주민, 문화 기획자, 디자이너, 작가 등 다양하다. 각기 다른 형태로 모였지만 공통점은 모두 “삶의 현장”에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 저널리스트는 아닐 수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지역의 내밀한 면모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동네를 걷고 가게에 앉아 사람을 만나고 한 계절을 통째로 보내며 지역을 바라본다. 이 느린 관찰이 로컬 매거진의 깊이를 결정한다.

 

부산을 “다시” 우려내다: 『다시, 부산』

『다시, 부산』은 도시 부산을 중심으로 각호마다 다른 소주제를 기획해 풀어내는 독립 매거진이다. 제호에 쓰인 “다시”는 일본어 “だし(국물)”에서 착안한 말로, “우려낸다”와 “한 번 더”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익숙한 도시를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끓여내는 것, 그것이 『다시, 부산』의 작업 방식이다.

 

독자 투고로 원고가 구성되기에 같은 장소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일도 많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곳은 역시 바다다. “바다는 항상 거기 있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색이 다르다.” 사라지지 않고 늘 제자리에 있는 부산의 바다는 각자의 기억과 감성으로 매번 새롭게 표현된다. 그래서 『다시, 부산』 속 부산은 단일한 풍경이 아닌, 다층적인 감각의 집합으로 읽힌다.

 

이 매거진은 텍스트뿐 아니라 결과물의 형태에서도 다양한 실험을 이어간다. 각호의 주제에 맞춰 디자인 굿즈를 제작하거나, 로컬 브랜드와 협업한 기획 상품을 함께 발행한다. 특히 부산의 특산물인 다시마를 활용한 굿즈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먹거리인 동시에 지역 정체성을 담고 있는 다시마를 통해 독자들은 부산의 맛과 향을 직접 경험한다. 이 외에도 삼진어묵, 덕화명란, 신기산업, 모모스커피, 대선주조 등 부산을 대표하는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이야기는 물성을 얻고 도시는 오감으로 기억된다.

 

『다시, 부산』은 부산의 특산물 소개에 이어 특집 기획 단행본 『맛있는 부산』을 제작하기도 했다. 『다시, 부산』의 박나리 대표는 책을 들고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찾아, 부산 여행에서 맛있는 추억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SNS로 수많은 가게를 추천받고 검색할 수 있지만 진짜 로컬 맛집을 찾기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다시, 부산』은 광고에 지친 여행객을 위해 부산 여행 시 신뢰할 만한 지침서가 될 『맛있는 부산』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책은 현재 영업 중인 가게만을 기록하지 않았다. 비록 문을 닫았을지라도 한때 부산을 대표했던 맛집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시작된 프로젝트다.

 

『다시, 부산』은 부산의 다양한 팝업스토어, 마켓들과 연계해 지역 콘텐츠를 소개한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선정한 동네상권 발전소사업에 참여해 기장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반찬일기장>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반찬일기장>은 사람들이 기장시장에서 구입한 재료로 즉석에서 반찬을 만들어 주거나, 반찬을 판매하는 프로젝트다. 『다시, 부산』 의 목표는 결국 “다시 또다시, 다시 봐도 늘 새로운 부산”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있다. 늘 보던 콘텐츠도 『다시, 부산』의 손길을 거치면 새로운 감각으로 변모한다. 그렇게 『다시, 부산』은 잡지라는 형태에 국한되지 않고 부산을 다양한 감각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고정된 지역 이미지를 부드럽게 풀어내고자 한다.

『다시, 부산』 메쉬백 Ⓒ다시부산 스마트스토어
『다시, 부산』 매거진 Ⓒ다시부산 스마트스토어

스펙타클하게 바라본 인천의 지금: 『스펙타클』

 

“spectacle”의 올바른 외래어 표기는 “스펙터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스펙타클하다”라고 말할 때, “스펙타클”에는 사전적, 사상적 정의로는 어딘가 설명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스펙타클함이 있습니다. 마계라는 거친 오명을 쓴 오해의 도시임과 동시에, 넘실대는 자연과 최첨단의 미래도시를 모두 품고 있는 대한민국 제3의 도시. 인천이라는 도시를 머릿속에 그릴 때 떠오르는 모습은 상상하는 이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롭고 정형화되지 않은 이미지일 것입니다. 마천루로 둘러싸인 송도와 100년 넘은 건물에서 아직도 빙수를 파는 동인천을,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냈다는 산과 6.25 전쟁의 격전지를 모두 품은 곳이 인천이라는 도시니까요. 인천은 그야말로 스펙타클합니다. 

– 인천 로컬 매거진 <스펙타클> Vol.1 Editor’s Letter 발췌

 

인천 로컬 매거진 『스펙타클(spectacle)』은 도시 인천의 이면을 탐색한다. 표준 외래어 표기로는 스펙터클이 맞지만 이 매거진은 인천만의 설명하기 어려운 생경함과 에너지를 담기 위해 “스펙타클”이라는 표현을 택했다. 창간호에서는 “코로나 시대의 로컬”을 주제로 팬데믹 속에서 변화한 인천의 일상을 기록했다. 이후 “두근두근 마계인천”, “City of Noodle” 등 권마다 서로 다른 키워드를 설정해 도시의 다층적인 얼굴을 조명해 왔다. 인터뷰, 에세이, 대담, 사진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단순한 지역 소개를 넘어 인천이란 도시가 품고 있는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을 포착한다.

 

특히 마계인천이란 표현은 이 도시를 둘러싼 오래된 이미지와 편견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스펙타클』은 그 말속에 담긴 오해와 매력을 외면하지 않는다. 운봉공구, 소래패구, 월미도 같은 익숙하지만 쉽게 서사화되지 않았던 공간을 통해 인천의 고유한 결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선이다. 타자의 시선이 아닌 이 도시를 살아온 “인처너”의 감각으로. 그렇게 『스펙타클』은 인천을 둘러싼 수많은 풍문과 인상을 다시 구성하고 그 안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결과적으로 이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발굴하고 낡은 도시 이미지를 다시 그려보려는 조용한 시도다. 사라져가는 지역성을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이미지를 해체하고 지역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열어보려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스펙타클』이 포착한 감각은 매거진이라는 매체를 넘어 보다 넓은 실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인천 스펙타클은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스펙타클 타운, 스펙타클 워크를 통해 도시를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탐색하고 새로운 로컬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중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는 인천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로컬 콘텐츠를 기획하고 연결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다. <로컬 소셜 클럽>과 <로컬 에디터 스쿨>로 나뉘어 새로운 이웃을 만나고 직접 로컬 콘텐츠를 만든다.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는 인천 토박이부터 새로 유입된 이방인까지 인천을 즐기고 싶은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스펙타클 타운은 동인천 배다리에 자리한 오프라인 거점으로, 전시와 마켓, 다양한 모임으로 도시 일상의 층위를 발견한다. 작지만 알찬 인처너들의 사랑방이다. 스펙타클 워크는 인천 스펙타클의 공식 회사명으로, 협업 프로젝트와 지역 기반 활동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마계인천 표지 Ⓒ인천 스펙타클
『스펙타클』 Vol.3 <시티 오브 누들> 중 일부 Ⓒ인천 스펙타클

비옥한 땅에서 길어 올린 따뜻한 이야기: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는 충청북도 옥천군이라는 농촌 삶터에서 펼쳐지는 소박한 일상을 기록하는 지역 매거진이다. 잡지 이름의 “옥(沃)”이 옥천의 비옥한 흙을 상징하듯, 이 잡지 역시 『농가월령가』를 짓는 마음으로 농촌의 계절과 흙 내음을 담는다. 화려하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 말없이 삶을 보듬어 온 강과 산, 논밭과 마을 고샅까지 사라져가는 풍경을 세밀히 기록한다. 그 속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에게 『월간 옥이네』는 다정한 질문을 건넨다. 역사에 기록된 1%가 아닌 역사를 만든 99%의 평범한 이웃들이 주인공이다. 오랜 세월 마을의 기억을 품은 어르신들, 노동으로 지역사회를 일구는 주민들, 농촌에 새로 뿌리를 내린 청년들과 농민들의 목소리가 지면을 채운다. 특별한 누군가의 삶이 아닌 바로 옆 이웃의 이야기를 담아 잊히기 쉬운 일상의 가치를 조용히 드러낸다.

 

『월간 옥이네』만의 특별한 재미는 평범한 주민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내는 다양한 특집과 기획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79호에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옥천의 방앗간 풍경을 특집으로 다뤘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무색하게 쌀 소비량이 줄며 마을의 방앗간도 하나둘 문을 닫고 있지만, 주민들 기억 속의 방앗간은 여전히 고소한 냄새와 따뜻한 김이 가득하다. 『월간 옥이네』는 이렇게 주민의 기억을 모아 과거와 현재를 정겹게 연결해 낸다.

 

때로는 동네 사람들을 직접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특집도 준비한다. 특히 귀농·귀촌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옥천애(愛)바라다」 같은 기획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선배들이 전하는 생생한 경험과 조언은 농촌 생활의 현실과 따뜻한 공동체의 매력을 함께 보여주며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얻는다. 결국 『월간 옥이네』는 농촌이라는 공간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잔잔히 이어져 온 삶의 뿌리를 찾아내고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보듬으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기록을 남긴다.

 

이 외에도 로컬의 기록을 담은 다양한 매거진들이 전국 곳곳에서 발행되고 있다.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살아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iiin』,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속 가장 핫한 성수동을 로컬의 시선에서 바라본 『도만사 매거진』, 강릉문화재단과 강릉문화도시가 함께 강릉만의 콘텐츠를 발굴하여 담은 『시나미강릉』 같은 다양한 시선들이 존재한다. 결국 로컬 매거진은 같은 장소를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시선으로 기록된 이야기들이 모인 하나의 책장이다. 그 안에는 삶의 무늬가 새겨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을 더욱 풍성하게 읽어내게 만든다.

『월간 옥이네』 매거진 Ⓒ월간 옥이네 인스타그램
『월간 옥이네』 5주년 기념 모의고사 Ⓒ월간 옥이네 인스타그램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는 독립서점

로컬 매거진은 결국 사람을 통해 사람에게 전달되는 매체다. 그 과정에서 매거진이 놓이는 공간은 매개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독립서점, 마을 사랑방, 작은 도서관, 카페 등 지역 곳곳의 공간들은 매거진으로 사람과 사람, 그리고 장소를 잇는 연결점이 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책장을 넘기며 자신이 속한 공간을 새롭게 발견하고 때로는 이웃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책이라는 물성이 가진 고요함 속에서도 로컬 매거진은 조용히 사람들의 관계를 움직인다.

 

특히 독립서점은 로컬 매거진의 중요한 접점이 된다. 이곳은 책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도시의 정서와 사람들의 삶을 담는 감각적인 커뮤니티 공간으로 진화했다. 서울, 제주 등에 위치한 “종이잡지 클럽”은 로컬 매거진을 비롯한 전 세계의 다양한 잡지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면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매력을 전달한다. 강릉의 “고래책방”은 강릉이라는 지역 자체를 테마로 도시의 숨겨진 감성을 깊이 있게 소개한다. 또한 통영의 “봄날의 책방”은 부부가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며 로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심히 기록하고 소개한다. 이들 서점에서는 매거진이 진열장을 넘어 대화의 중심이 된다. 독자와 제작자가 직접 만나 지역 이야기를 공유하며 살아있는 경험이 오간다. 매거진은 이렇게 장소의 공기를 만들어내며 서점이라는 공간을 지역과 사람을 잇는 감각적 매개로 탈바꿈시킨다.

 

최근에는 대형서점과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로컬 매거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저 문화적 트렌드가 아닌 변화의 흐름과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지역성과 정체성”, 그리고 “기록”이라는 개념에 깊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로컬 매거진이 단지 지역 정보를 기록하는 매체가 아닌,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기억과 감성을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의 일부라는 뜻이기도 하다.

 

로컬 매거진은 단순한 종이의 모음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글과 이미지, 책장이 놓인 장소, 그 위에 얹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기록이 연결로, 연결이 공동체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로컬 매거진은 사람과 지역을 부드럽게 엮어내는 마중물이자 도시가 지닌 섬세한 감각을 깨우는 작은 시작점이다.

강릉 고래책방 Ⓒ동네서점
통영 봄날의 책방 Ⓒ봄날의 책방

로컬 매거진은 지역의 작은 목소리를 기록하고 그 속에 담긴 사람과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지속될 수 있는 배경에는 단지 기록에 대한 열정만이 아닌 이를 지탱해 주는 공동체가 있다.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 지역 내 소규모 공간에서 열리는 독자 모임과 워크숍, 그리고 독자들의 자발적인 후원과 참여는 로컬 매거진을 지탱하는 든든한 힘이 된다. 이 힘이 모여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깊고 풍성해지며 매거진은 콘텐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 하나의 작은 사회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다.

 

매거진에 담긴 기록은 결국 실천으로 확장된다. 지역에 대한 기록은 사람들에게 그 장소에 머물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주며 나아가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로컬 매거진의 독자들은 매거진을 통해 지역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직접 그곳을 찾거나 지역 문화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작은 동네에서 시작한 기록들이 어느새 사람들이 지역을 새롭게 인식하고 지역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는 구체적인 계기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로컬 매거진은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고 강화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이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보존을 넘어 지역의 미래를 상상하는 바탕이 된다. 결국 로컬 매거진은 기록과 기억에서 시작해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구체적인 행동과 공동체의 힘을 만들어내는 매개체다. 이것이 바로 로컬 매거진이 품고 있는 가능성이자 우리가 다시 발견하게 될 지역의 새로운 힘이다.